Friday, November 1, 2019

몽마르뜨의 여인 수잔 발라동 Suzanne Valadon - Part 1

몽마르뜨는 밀밭, 광산, 풍차와 와인 재배지로 유명한 언덕이 많은 지역이었다. 제분이나 포도를 압착하기 위해 몽마르뜨에 풍차가 많았다고 한다. 물랭은 제분기, 방앗간이라는 .
파리는 예전부터 석고와 석회암이 풍부한 곳으로 1886 고흐가 그린 <Montmartre the Quarry and Windmills 몽마르뜨 언덕의 광산과 풍차>라는 그림을 참조. 언덕아래 하얀색 부분이 석고광산이다. 석고광산에서 채굴된 석고는 몽마르뜨 풍차에서 빻았다고 한다. 그런 경치때문에 많은 아티스트들이 모여들어 경치를 그렸다.
19세기 파리가 도시화가 되면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풍차는 더이상 작동하지 않았고, 포도밭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상업 빌딩들이 들어섰기 때문이었다. 채광은 문은 닫고 1860 파리 지역구로 편성된다. 1870 변해가는 몽마르뜨에 아티스트들이 모여 살기 시작했으며, 1880년대 카페와 카바레들이 번창하기 시작했다.
1886  고흐 <Montmartre the Quarry and Windmills 몽마르뜨 언덕의 광산과 풍차>


그당시 많은 아티스트들중에서 여류 화가 수잔 발라동 Suzanne Valadon.  
수잔 발라동의 화실이 몽마르뜨 뮤지엄 (Musee de Montmartre) 건물 안에 있다는 사실. 많은 관광객들이 사크레쾨르 성당(La Basilique Sacre Coeur), 테르트르 광장(Place du Tertre), 많은 카페와 레스토랑, 전시작품들, 초상화가들에게 관심이 많았지만, 몽마르뜨 뮤지엄안에는 그렇게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몽마르뜨의 역사를 많은 그림으로 이해하고 싶으면 뮤지엄에 방문하길 바란다. 예술작품들은 시대를 반영하기 때문에 작품들을 통하면 당시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기 쉽다.


몽마르뜨 뮤지엄 (Musee de Montmartre) 입구
몽마르뜨 뮤지엄 (Musee de Montmartre) 입구
몽마르뜨 뮤지엄 (Musee de Montmartre) 3층 수잔 발라동 화실
몽마르뜨 뮤지엄 (Musee de Montmartre) 3층 수잔 발라동 화실
몽마르뜨 뮤지엄 (Musee de Montmartre) 3층 수잔 발라동 화실
몽마르뜨 뮤지엄 (Musee de Montmartre) 3층 수잔 발라동 화실
몽마르뜨 뮤지엄 (Musee de Montmartre) 수잔 발라동 화실
몽마르뜨 뮤지엄 (Musee de Montmartre) 수잔 발라동 화실
몽마르뜨 뮤지엄 (Musee de Montmartre) 수잔 발라동 화실
몽마르뜨 뮤지엄 (Musee de Montmartre) 수잔 발라동 화실

몽마르뜨 뮤지엄 (Musee de Montmartre) 수잔 발라동 화실

수잔 발라동 화실은 메인 건물 3 왼쪽방에 위치해 있다. 유명 피아니스트 에릭 사티, 유명화가 르느와르, 로트렉, 고호, 피카소 등은 알지만 수잔 발라동은 모른다. 특히 프랑스인들도 모른다. 극히 예술에 조예가 있지 않는다면.
위에 유명한 인물들이 같은 시대에 함께 살았으며 친구, 지인 혹은 연인으로 시대를 풍미했다면 이제서야 수잔 발라동에 모두 흥미를 가질것이다.

수잔 발라동 화실에 들어서니 빛이 들어오는 창가가 우선 눈이 들어왔다. 파리언덕 아래 즐비한 오랜건물들 배경이 보였다. 문득 몇년전에 엑상 프로방스의 세잔의 아트리에 방문했을때의 순간이 뇌리에 떠올랐다. 세잔의 화실보다는 작은 화실.
유화 물감들이 완전 굳어서 파레트에 석고처럼 달라불어있었다. 오랜시간이 지났음을 말해준다.

이젤에 걸려있는 물감 때가 묻어있는 수건들. 난로, 정물 집기들이 여기 저기 나부러져 있다. 벽에 걸려있는 수잔발라동의 작품들.  Suzanne Valadong 친필 사인이 보인다. 확실히 그녀의 오리지널 작품들이다. 

몽마르뜨 뮤지엄 (Musee de Montmartre) 수잔 발라동 화실
몽마르뜨 뮤지엄 (Musee de Montmartre) 수잔 발라동 화실



수잔 발라동(Suzanne Valadon 1865-1938) 아방가르드(Avant-Garde)여류 화가이다.
그녀는 유명세를 타기 전까지 고분고투하는 인생을 살아야했다. 
그녀는 어릴때부터 그림의 재능이 있었지만 불우한 가정환경으로 미혼모아래서 성장한다.
그당시 여자들이 화가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했고, 남다른 미모가 됐던 그녀는 서커스 단원으로 활동을 한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그네에서 떨어져 부상을 당한 그녀는 더이상 서커스일을 없게된다. 새옹지마. 불행으로 그녀의 인생 전환점이 된다. 그녀는 화가의 모델로서 일하게 된다. 화가 Pierre Puvis Chavannes(1824-1898) 같은 화가로 부터, 다른 화가들을 만날 있는 좋은 기회가 된다. 
그로부터 수잔 발라동은 유명 아티스트들에게 뮤즈가 된다. 그녀는 느르와르의 눈에 들어 그의 뮤즈 모델이 된다. 피에르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Auguste Renoir, 1841 - 1919) 프랑스의 대표적인 인상주의 화가로서, 여성의 육체를 묘사하는 특수한 표현을 보였으며 풍경화에도 뛰어났다
르느와르는 그의 화풍에서 그의 아내와 수잔과의 그림이 비교가 된다.

오른쪽 여인이 르느와르 아내, 중앙에 있는 여인이 바로 수잔 발라동 


그러나 그녀의 인생은 그의 화풍처럼 로맨틱하거나 행복하지가 않았다. 그녀의 마음은 우울해 있었고, 거친 성격의 소유자 였다. 그런 그녀의 내면을 정확하게 표현가 화가가 그녀앞에 나타나게 된다. 바로 툴르즈 로트랙.
로트랙은 물랭루즈나 클럽에서 캉캉 춤을 추는 댄서들의 포스터를 그리던 화가였다.
그는 성장도중에 지병으로 인해 성장이 중단되어 키가 자라지 않은 정상인의 몸이 아니었다.
그러나 수잔은 몇몇의 멋진 남자들 보다도 그를 택했다. 그를 사랑했다.
내면에 사연이 많은 그녀는 멋진 왕자같은 외적인 보다는 로트랙 처럼 외적은 매력적이지 못하지면 내면의 그녀를 이해할 있는 로트랙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로트렉은 과감하게 결렬하고 그녀 곁을 떠난다.

로트렉이 그린 수잔 발라동(왼쪽) / 로트렉 사진 (오른쪽)



수잔 발라동은 여러 화가들에게 다른 모습으로 작품에 투영된 것이 무척 흥미롭다.
그녀가 화가의 개성과 화법에 따라 고상한 여인, 아름다운 여인, 창녀같은 여인, 거친 여인 팔색조 매력을 가진 그녀였다. 

로트렉이 그린 수잔 발라동

드가의 그림 - 수잔 발라동

샤갈의 그림 수잔 발라동
모딜리아니의 그림 수잔 발라동


그녀를 사랑했던 남자들 중에서 피아니스트 에릭 사티를 빼놓을 없다.
담배연기가 자욱한 . 아름다운 조명이 담배연기에 색감을 준다. 많은 아티스트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술을 마시며 예술에 대해 이야기한다.
유난히 테이블 중앙에 미의 자태를 내며 앉아있는 여인, 수잔 발라동, 그녀의 섹시한 립스트은 담배를 물고, 입술 사이에서 연기가 내뿜는다. 그녀의 눈은 섹시한 마스카라로 주위에 둘러 않아있는 남자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남자들 그룹 자리에 유명 화가들이 모두 앉아있다. 르느와르, 피카소, 로트랙, 드가, 모델리아니, 루소 등등.
그들은 모두 수잔 발라동에게 보이려고 자기 예술세계 자랑을 늘어 놓고 있다.
그때 구석에 외롭게 않아있는 볼품없는 남자, 아무도 그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그는 홀로 샷을 들이키고 있다. 바로 빈센트 고호. 
그런 가운데 라이브 뮤직, 아름다운 선율의 피아노 치는 소리가 은은히 들려온다.
시끌버쩍하던 바는 피아노 선율에 모두 조용해 지며, 모두 무대위 피아노를 치고 있는 피아니스트에게도 시선이 집중된다.
조명에 남자의 머리에 스폿 조명이 내리고 지긋이 눈을 감고 피아노를 치고 있는 멋진 남자. 바로 에릭 사티.
아무리 코대가 높은 수잔 발라동이라고 해도 순간 음악과 분위기에 매료가 되지 않는다면 여자가 아니다.
에릭 사티는 피아노를 치면서, 유명세를 타고있는 로트렉과 춤을 추고 있는 수잔 발라동을 보는 순간 첫눈에 사랑에 빠졌다. 
그렇게 에릭과 수잔은 시대에 몽마르뜨 바에서 이렇게 만나 잠시 연인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러나 그런 로맨스에 수잔의 짧았지만, 에릭의 사랑은 집요하리만큼 길게 이어졌다. 결국 여정의 짝사랑으로 변하게 된다. 그가 보냈던 많은 편지들. 그러나 수잔 발라동은 냉담했다. 


수잔 발라동이 그린 에릭 사티


그런 느낌을 살리려고 뮤지엄 수잔 발라동 화실옆 전시실에 스피커에서 피아노 선율이 흘러나왔다. 바로 에릭사티의 피아노 . 아마 수잔 발라동의 마음을 흔들었던 이었으리라.
스피커 아래 그림이 없고 벽에 이름만 붙어있다. 에릭 사티 
필자는 음악을 담고 싶어서 비디오 촬영을 했다. 에릭 사티 이름에서 부터 수잔 발라동의 그림들을 차래대로 피아노 곡과 함께 영상에 담았다. 
<짐노페디(Gymnopédies)> 에릭 사티(Erik Satie, 1866~1925) 1888년에 완성한 3곡으로 구성된 기악곡이다. <짐노페디> 사티의 대표적인 초기작품이다.



그러나 수잔의 마음은 다른 남자들에게 있었다. 로트렉과도 잠시 연인관계를 정리하고, 결국 생활에 안정을 있는 남자를 찾아 결혼을 하게 된다.
로트렉과의 만남에서 로트렉은 그녀의  재능을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친구 화가 에드가 드가(Edgar Degas 1864 -1917)에게 소개해 준다. 드가는 그녀의 재능이 빛을 발하도록 도와준다. 
1894 드디어 그녀는 여성으로는 여류화가로 The New Salon of the Societe Nationale des Beaux-Arts 에서 전시회를 갖는다. 수잔은 서서히 화가로 입지를 굳히게 된다.
1909 부터 그녀는 본격적으로 작품에 전념하게 된다. 
수잔 발라동과 아들 모리스 유틸리오

수잔 발라동이 그린 모리스 유틸리오

그녀의 아들도 나중에 화가로 성장한다. Maurice Utrillo (1883-1955)
화가는 비운의 화가이다. 수잔 발라동이 18세에 모리스를 낳았다. 그당시 수잔 발라동의 사생활이 문란했기때문에 누가 친아버지인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속에서 모리스는 성장과정이 순탄할리가 없다. 수잔은 여전히 자신의 사생활을 누리기 위해 어린 모리스의 우유에 술성분을 조금씩 섞여 먹여 재웠다. 모리스는 자연히 알콜중독의 상태로 자라게 된다.  수잔이 그를 낳았던 18살에 알콜 중독 치료를 받기 위해 수잔의 친구들에게 그림을 배우게 된다. 

그러던 수잔은 그녀의 아들 친구 20 연하와 사랑에 빠져 주위의 시선을 질타를 받기도 한다.
1920년경 그녀는 유명 화가로 등극하게된다.
이렇듯 수잔 발라동의 인생은 그야말로 드라마틱하며 한편의 영화를 보는 같다. 
그런 그녀가 살았던 시대를 몽마르뜨를 음미하며 그녀가 작업을 했던 화실과 그녀의 전시들, 동시에 에릭 사티의 음악을 들으며 그년의 작품들은 본다면  20유로 뮤지엄 입장료와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을 것이다.

작업중인 수잔 발라동


글/사진: 강영만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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