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르와르가 그린 <그네 The Swing> |
수잔 발라동 화실에서 내려와 정원을 걷다보면 아래 전시건축물 들어가는 입구 바로 앞 나무에 그네가 달려있는 것이 보인다. 그 그네옆에 작품과 작품설명 사인이 세워져 있다. 필자가 고흐의 제2의 고향 프랑스 프로방스 아를 마을에서 보았던 그 세워졌던 사인들. 그가 그림을 그렸던 정확한 장소마다 그 사인들이 세워져있다. 고흐의 마지막 마을 오베르 위즈 우아즈 마을에도 마찬가지로 이런 사인들이 세워져 있다. 그 그네옆 사인에 1876년 르느와르가 그린 <그네 The Swing> 작품 설명이 있다. 수잔 발라동은 물론 르느와르가 직접 명작을 그린 장소이기에 이 뮤지엄은 큰 의미가 있다.
그 돌담 입구를 지나 전시빌딩 정원안으로 들어오면 사인이 세워져 있다. 수잔발라동 그림, 그녀의 연하남편이 나무아래 보인다. 그림에서 백그라운드 위로 보이는 것이 몽마르뜨 박물관 메인 빌딩.
에릭 사티 집 |
뮤지엄을 나와 왼쪽으로 몇 십미터 작은 계단 옆에 에릭 사티가 살았던 집이 있다.
에릭사티 푯말을 촬영한 후, 뮤지엄 방향으로 다시 돌아온 후, 골목을 따라 왼쪽으로 내려가면 4거리 골목 중앙에 <장미의 집 라 메종 로즈 La Maison Rose> 카페가 보인다. 문은 12시 이후에 열며, 카페가 작기 때문에 금방 손님들이 금방 자리를 차지한다.
라 메종 로즈는 수잔 발라동과 그녀의 아들 모리스 유트릴로 실제로 살았던 집이다. 수잔 발라동이 인상파화가들과 동거를 한 산실이다. 그녀는 라메종 로즈의 마담이자 그들의 공동 연인이다. 그녀는 그 화가들에게 모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모델이 서는 시간은 그녀가 원하는 시간에 정했다.
그 카페 바로 건너 오른쪽에 포도밭이 보인다.
작은 포도밭이지만, 포도 넝쿨이 아름다운 빛을 발한다. 19세기 전에 그렇게 많았던 포도밭이 모두 사라지고 남은 유일한 포도밭이라고 한다. 상징적인 의미를 살리기 위해 유일하게 전시용으로 남겼다. 상징적으로 포도를 키워서 그런지 알갱이는 작았으며 울타리를 쳐 놓아서 울타리 철망 사이로 사진을 담았다. 유일하게 남아있는 포도밭이지만 1934년 부터 시작한 매년 10월경에 포도수확축제를 한다. 일년의 단 한번의 기회이다.
현재 파리시에서 소유하고 있는데 밭을 관리하면서 한해에 약 1000~2000여 병 피노누와 Pinot Noir 가메Gamay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몽마르트 포도 수확 축제에서 수확한 와인을 시음해보거나 콘서트, 전시회, 지방 특산물 소개 등 다양한 공연과 행사가 있다. 그 포도밭을 반대편 몽마르뜨 뮤지엄안에서도 역시 볼 수 있다.
몽마르뜨 포도밭 바로 건너편에 인상깊은 카페가 눈에 들어온다.
‘냄비에서 도망간 토끼’라는 뜻의 라뺑 아질 까페는 16세기부터 몽마르뜨 언덕의 포도밭 옆에 터를 잡은 오두막 주점이었는데, 랭보와 베를렌의 친구였던 앙드레 질이 1880년에 그린 간판으로 인해 비로소 카페로 변신한다. 이 카바레는 새 이름으로 Lapin Agile 혹은 Agile Rabbit 이다.
The Lapin a Gill (The Rabbit by Gill)은 비로 잉드레 질(Andre Gill,1840-1885) 작품. 1875년 캐리커쳐 아티스트 Andre Gill은 바의 새 로고를 완성한다. 전에는 카바레 (Cabaret of the Assassins)였다. 모자와 스카프를 한 토끼가 소스팬에서 뛰쳐나온다. 손에는 와인병을 들고 있다. 백그라운드는 풍차와 서로 껴안고 있는 커플이 보인다.
라뺑 아질에는 당대 예술가들이 드나들었다. 르누아르, 로트렉, 베를렌, 페르난도 레제, 에릭사티, 파블로 피카소, 모딜리아니, 수잔 발라동과 그녀의 아들 화가 위트릴로 등등.
여기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어느 가난한 청년 아티스트가 테이블에서 식사를 했다. 식사후 웨이트리스가 테이블로 다가올때 그는 돈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급하게 냅킨에다가 펜으로 그녀 모습을 스케치하기 시작했다. 여자가 그에게 청구서를 주었을 때, 그는 말하길. “당신의 아름다움과 비교할 때 돈은 얼마죠? 밥값 대신에 이건 어때요. 당신을 위한 나의 존경의 표시입니다.” 그는 그녀를 그린 냅킨을 주었다. 그녀는 그 스케치를 보고 기분이 좋아서 돈을 받지 않았다.
그는 이 방법이 또 먹힐거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Lapin Agile로 돌아 왔다. 그는 다른 웨이트리스에게 같은 방법으로 시도했더니 역시 그 방법이 통했다. 그래서 무료로 또 음식을 먹었다.
3번 째로 다시 와서 시도했을때 식당 주인이 다가와서 화를 버럭내며 그동안 공짜로 먹었던 것까지 포함해서 3끼 모두 내라고 고함쳤다. 그는 그 시점에서 모두 돈을 냈을까?
그는 머리를 써서 이런 딜을 했다.
“지금 그림을 그려 줄테니 먼 훈달 이 그림은 엄첨난 수익을 가져다 줄 것이다.”
주인은 하잖은 그림도 식사 몇끼니 보다는 가격이 더 나갈 것 같아서 거래를 승락했다.
그 청년 말대로 훗날 그가 그려준 그림은 여러 주인을 거쳐가면서 최근에는 1989년 경매에서 40.7 밀리언 달러 대에 팔렸다.
그 그림이 바로 피카소가 그린 그림 Au Lapin Agile 이다. 그 청년이 바로 피카소였다.
피카소가 1905년 Au Lapin Agile |
반대로 다시 언덕으로 올라오면 언덕 광장 중앙에 어디서도 보이는 유명 카페. 르 콩슐라 LE CONSULAT 나른해지는 오후, 한 잔의 에스프레소가 그리워 그 카페 안으로 들어간다. 옆테이블에 샌드위치가 먹음직스러워 물어보았더니 유명 핫 햄과 치즈 샌드위치라고한다. Croque Monsieur, garni salade.
그 카페는 1900년대 부터 역시 유명 화가와 영화배우들이 왔다갔던 장소이다. 르 콩슐라 옆면에 붙어있는 간판에 어떤 사람들이 왔었는지 자랑하고 있다. 피카소, 시슬리, 디아즈, 반 고흐, 툴르즈 로트렉, 모네..
또한 토종 수잔 발라동의 아들 몽마르트의 화가 모리스 위트릴로는 주로 몽마르트의 풍경을 그렸는데 여러번 이 장소 르 콩슐라를 그렸다. 이 장소를 그릴때 마다 르 콩슐라 너머로 보이는 사크레 쾨르 성당을 바라보며 언제나 그 자리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성당에서 신앙의 위안을 얻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장소는 많은 영화의 배경 또는 촬영장소로 유명하다. 가장 유명한 영화로는 1997년 개봉한 에브리원 세즈 아이 러브 유,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이다.
Maurice Utrillo 1937 - Au Consulat |
그 카페를 나와서 좀 언덕으로 내려가다 보면 여가수 달리다(Dalida 1933-1987) 의 흉부 동상이 나온다. 한때 아름다운 목소리와 음룰로 팬들을 사로 잡았던 전설적인 프랑스 여가수 역시 몽마르뜨 출신이다. 그녀는 우울증으로 자살한다.
그녀의 집은 좀 반대쪽에 떨어져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가슴을 만지고 지나갔는지, 아이언이 달아서 색이 변질되어 있다.
러시아 니즈니고로도브에 방문했을때 거리에 않아있던 동상 러시아 유명 배우 Yevgeniy Yevstigneyev (예브게니 예브스티그네예브) 복코 역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만지고 지나갔는지 색깔이 역시변질되어 있었던 것이 기억났다.
러시아 니즈니고로도브 - 유명배우 Yevgeniy Yevstigneyev 예브게니 예브스티그네예브 |
Yevgeniy Yevstigneyev 예브게니 예브스티그네예브(러시아 니즈니고로도브) |
거기를 지나면 목을 들고 있는 목이 없는 교구의 동상이 보인다.
당시 풍차가 있던 몽마르뜨 언덕은 달동네로 개발이 시작되면서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이었다. 그리고 풍차는 당시 방앗간 구실을 하던 곳이었다. 그런데 로마군이 이곳을 점령하고 이곳에서 잡아온 이교도들을 참수했다고 했다. 당시는 아직 기독교가 인정되지 않던 시기였기에 주로 기독교 신자들이 참수당했다.
그래서 언덕을 가리키는 몽(Mont)이라는 단어와 순교자를 뜻하는 마르뜨르(Martre) 라는 라틴어를 조합해 몽마르뜨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이다. ‘순교자의 언덕’ 인 셈이다.
서기 250년경 파리의 초대 주교였던 드니(Denis) 신부는 로마군에게 참수형을 당했는데, 그때 드니 신부는 자신의 잘린 머리를 들고 파리 북부지방까지 거의 4km 를 걸어가서야 쓰러졌다고 한다.
후세에 드니 신부는 성인으로 추대되었고 이곳은 생드니(Saint Denis)라는 지명으로 불리게 된다. 그후에 많은 기독교 신자들이 참형을 당했는데 사람들은 몽마르뜨를 고유명사처럼 부르게 되었다.
그 동상을 지나 돌면 공원바로 이래벽에 신사가 반 정도 벽을 통해 나와있는 동상이 보인다. 역시 많은 사람들이 그의 손을 잡고 사진촬영을 해서 손가락이 색깔이 반들반들 거린다.
프랑스의 유명 소설자이자 극작가인 마르셀에메(Marcel Ayme)의 1942년 작품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Le Passe -Muraille>, 우리나라에서는 <벽을 뚫는 남자> 뮤지컬로 공연했다.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는 벽을 통과하는 신박한 재주를 가진 주인공이 자기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상사를 복수하려고 결국 이 재주를 마음껏 발휘한다. 가명으로 도둑질을 하고 태연히 잡힌 주인공은 탈옥도 감행하게 되고, 금발미녀와 사랑에 빠지기도 한다. 결국 그는 조각상처럼 벽속에 갇히게 되는 비극이다. 자신을 자유롭게 만드는 그 능력이 결국엔 영원히 구속되게 만들어버린다는 교훈. 그외에 '생존 시간 카드’ 등의 소설이 있다.
'생존 시간 카드'도 시간이 거래된다는 기발한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영화 <인타임>이 이소설에서 모티브를 따온것같다.
빈센트 반 고호의 친동생 테어도르 고흐(Theodore Van Gogh)의 집. 빈센트 반 고흐를 마지막까지 도와 주었던 동생이고 정신적 물질적 지주였기에 그냥 스치고 지나갈 수 없다.
DANS CETTE MAISON
VINCENT VAN GOGH
A VECU
CHEZ SON FRERE THEO
DE 1886 a 1888
그의 묘지는 파리의 근교 기차로 1시간 거리에 오베르 쉬르 우아즈 마을 공동묘지에 고흐와 나란히 묻혀있다. 파리에 며칠 머물경우, 꼭 빈센트의 마지막 종착지 마을 오베르 쉬르 우아즈 마을에 방문하기 권한다.
빈센트 반 고호의 친동생 테어도르 고흐 집 |
테어도르 고흐 의 집에서 좀 더 골목으로 걸어가다 보면, 옛날 오리지널 풍차가 보인다. 23개 정도의 풍차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두개의 풍차이다. 그러나 1개는 개인 소유라 안에 들어갈 수 없고, 나무에 가려 사진을 찍어도 잘 나오지 않는다. 이것이 유일한 풍차라고 착각해 이것만 찍고 간다면 나중에 후회할 것이다.
두번째 유명 풍차가 있는 레스토랑 바는 바로 조금안 올라가면 찾을 수 있다.
LE MOULIN DE LA GALETTE
이 두개의 풍차가 바로 고흐가 파리에서 그린 풍차 배경이 된 곳이다.
드르레라 불리는 제분업자는 ‘물랭 드 라 갈레트’라는 풍차를 상징으로 댄스홀을 열어 대성공을 거둔다. 입구에서 올려다본 풍차의 샷 앵글.
35세였던 르느아르가 1876년에 그린 작품. 궁핍한 아티스트였던 르느와르는 샤르팡티에가 그의 작품을 사 준 덕분에 몽마르뜨에 월 100 프랑 월세집을 얻을 수 있었다.
벤치에 앉아 있는 여인은 모델인 잔느의 여동생 에스텔, 춤추고 있는 왼편의 한쌍은 쿠바출신화가 카데나스와 모델 마고, 오른쪽 무심한 듯 앉아있는 세남자 Frank Lamy, Norbert Goenuette, 조르쥬 리비에르. 이 작품을 그리기 위해 르느와르는 거의 1년 반이나 매일 이곳을 드나들며 스케치를 했다.
Renoir 1876 - Moulin de la Gallette |
이런장소들은 어떻게 찾을까? 세가지 팀을 준다.
첫째, 전통적인 방법 지도를 보며 찾아다니는 방법
둘째, 몽마르뜨는 전 세계인들이 찾는 유명관광지라, 단체 관광들이 엄청많다. 각각 그룹관광마다 가이드들이 붙어서 다양한 그 나라말은 모두 설명을 하며 단체를 인솔하며 다닌다. 그러니 단체 관광객들이 다니는 곳, 몰려있는 곳은 모두 유명 장소이다.
세째, 스마트폰 구글 지도앱을 이용해 실시간 걸어다니며 지도를 보며 찾는 방법이다. 구글지도가 미국과 유럽은 잘 되어있다. 파리같이 국제 도시는 삼성 스마트폰 경우, 지역이름이 동시에 한글로도 나온다. 유럽 어디에 가든 구글 지도 맵을 이용하면 정확하고 쉽게 찾을 수 있다. 한 가지 단점은 배터리가 금방 없어진다는 점이외에는 완벽하다. 구글 지도앱을 언급해서 한가지만 더 언급한다. 구글 로컬 가이드를 이용하면 좋다. 일반인들이 장소들을 다니며 유명관광명소, 호텔, 레스토랑, 바 등을 다니며 사진을 찍어서 리뷰와 함께 올리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경험했던 일반인들이 올리는 리뷰와 사진이라 솔직 할 수가 있다.
풍차 바로 밑에 레스토랑 간판이 보이면서 풍차가 보이게 로앵글로 촬영을 한다.
그리고 좁은 골목으로 접어들면 골목 중간 정도에 고급 하얀 주택이 보인다. 철문은 굳게 닫혀있고 표지만 달리다의 집
거기서 계속 좀 나오다 보면 작은 공원에 여인들이 여러명 들고 있는 조각상이 보인다. 그 조각상 앞 건물에 유명 화가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는 초록색 문이 보인다.
LA BATEAU LAVOIR 바토 라비아
그러나 아래 표시를 보면, 작품감상은 300m위에 몽마르뜨 뮤지엄으로 적혀있다.
이 광장의 이름은 에밀-구도(Emile-Goudeau). 에밀-구도는 몽마르트에 살았던 시인이자 작사가의 이름. 이 광장은 무엇보다도 피카소나 후앙 그리스, 반 동겐 같은 화가나 막스 야콥, 아폴리네르, 마크 오를랑 등 그때까지 유행하던 시풍을 혁신한 시인들의 동네였다. 그리고 이 모든 예술가들이 광장 한켠에 있는 <세탁선 Bateua-Lavoir>이라는 건물에 모여 살았다.
원래는 피아노 공장이었던 이 목제 건물은 1860년 경에 가운데 긴 복도를 두고 양쪽에 방이 늘어서 있어서 배의 선실을 연상시켰고, 그래서 <세탁선>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한다. 이 건물에는 가스도 전기도 공급되지 않았으나 세가 싸서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 살았다.
이 세입자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물론 피카소다. 그의 삶이 전기를 이룬 것은 바로 <세탁선>에서이다. 그는 여기서 페르낭드 올리비에를 만나 7년간 함께 살았다. 그리고 1905년 후앙 그리스와 그의 가족이 여기 들어오면서 큐비즘의 미학적 모험이 시작되었고, 피카소는 1907년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그렸다.
그리고 조금 내려오면 전세계인들의 사랑해 표지 벽. Le Mur des Je t'aime.
온갖 언어로 사랑한다는 말이 적혀있다. 그렇다. 우리는 모두 사랑이 필요하다. 그리고 사랑이 있기에 세상이 존재하고 역사가 존재하고, 이렇게 몽마르뜨가 존재한다.
거기에서 큰 길로 나오면 온갖 섹스상품과 가게들이 난무한다. 그 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걸어가면 누구나 아는 물랭루즈 풍차가 보인다.
그곳에 가기전에 프랑스 영화 아멜리에를 좋아한 분이라면 꼭 권하고 싶은 카페가 있다.
방향을 틀어 좀 더 큰 길로 올라가면 일명 아멜리아 카페라고 하는 Cafe Des 2 Moulin
바로 아멜리에의 촬영장소이다. 주인공 아멜리에가 바에서 일하는 장소.
많은 사람들이 이 장소에서 차 한잔을 하고 촬영하고 간다.
그리고 좀 걸어내려와서 오른쪽 큰길로 좀 걸어가면 여전히 섹스숍들.
드디어 물랭루스, 붉은 풍차가 서서히 돈다.
해가 질 무렵에 촬영을 해야 칼러가 예쁘게 나온다. 풍차가 빨간색 조명이기때문에 백그라운 하늘을 파란색을 잡으려면 빨간 조명의 영향을 받아 백그라운 하늘은 반대로 아주 파랗게 나온다. 바로 원하는 예쁜 장면을 찍을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옆에 메트로를 타고 호텔로 오면 반나절 몽마르뜨 여행 일정은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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