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의 로마여행(Goethe’s Italian Journey)
1786년, 37세의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는 비밀리에 이탈리아로 여행을 떠난다. 그가 늘 꿈꾸어왔던 여행이었다.
몇개월 후에 드디어 로마에 도착한다. 그는 자신이 로마에 도착한 날을 제2의 생일이라고 할 정도였다. 2년 동안 로마에서 삶은 그의 인생에서 꿈같은 여정이었다고 그는 말한다.
2년 후 로마 여행을 마치고 바이마르(Weimar)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완전 바뀌어 있었다.
괴테가 쓴 <Italian Journey 이탈리아 기행>이 얼마나 섬세한 감성으로 역사의 현장들을 답사하고, 그리스 고전미의 본질인 조화와 균형이 이상과 비이성 사이의 통일성에 있음을 발견하고 낭만주의를 넘어 독일고전주의를 완성하는 데 초석이 되었다.
괴테가 쓴 <Italian Journey 이탈리아 기행>이 얼마나 섬세한 감성으로 역사의 현장들을 답사하고, 그리스 고전미의 본질인 조화와 균형이 이상과 비이성 사이의 통일성에 있음을 발견하고 낭만주의를 넘어 독일고전주의를 완성하는 데 초석이 되었다.
그의 로마의 2년 여행에 대해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떤 삶을 살았는지 간단하게 글을 써본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The Sorrows of Young Werther)”으로 문학계의 일약 스타가 된 괴테의 이름은 유럽전역에 이름이 널리 알려지게 된다.
바이마르가 고향이었던 괴테는 30세 중반에 바이마르에서 정부 관료일을 맏게 된다. 정부관료의 형식적인 관행들, 도로사업, 서류정리와 세금 관리 등등. 그에게는 별로 흥미있는 일은 아니었다. 그런일은 왕성했던 그의 작품활동을 더디게 만든다. 정부관료일을 맡고 있는 10년 기간중에 그는 거의 작품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는 돌파구가 필요했다. 괴테가 어릴적 부터 오래동안 꿈꿔왔던 로마 여행.
괴테의 아버지의 영향도 있었다. 괴테의 아버지는 로마여행을 다녀와서 프랑크푸르트의 집 거실에 로마전경 에칭 그림들을 걸어놓고 그 그림을 보면서 늘 기억을 되살리곤 했다고 한다. 포폴로 광장, 콜로세움, 세인트 베드로. 괴테는 그런 그림들을 매일 보며 로마여정에 대한 꿈을 그려왔다.
괴테의 로마에 도착하기 까지 과정 - [Goethe's Italian Journey Book - Goethe House, Roma] |
괴테는 과감하게 비공식적으로 로마여행을 계획한다. 주위에 아무에게도 그의 계획을 알리지 않았다. 그의 상부관료에게 간곡한 부탁과 설득으로 2년 동안 로마 출장, 요즘으로 말하면 해외 파견같은 일을 허락받는다. 그렇게 하므로 매달 월급이 지급되어 괴테의 2년 동안 생활을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독일 북쪽에서 남쪽 이태리의 여행은 주로 도보 여행이었다. 로마로 오는 여정중에서 베니스(Venice) 나 피렌체(Florence) 같은 중요한 도시는 며칠을 묵기도 했다.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의 배경이 되었던 피렌체 두오모 광장의 산타마리아 델피오레 성당 돔 |
핀초언덕(Passeggiata del Pincho)에서 내려다본 로마 전경 Roma Scenery |
마침내 꿈에 그리던 로마에 도착했다. 비공식적으로 방문을 했기때문에 공식적으로 그를 반기는 사람들은 없었다. 유일하게 5년전 부터 서신으로 왕래를 해오던 몇살 아래 화가 친구가 있었다. 전에 한번도 만난적도 없는 그는 바로 독일 화가였던 요한 빌헴 티슈바인 Johann Heinrich Wilhelm Tischbein. 요한 티슈바인은 히센(Hessen)지방에서 3대째 내려오는 유명한 화가 집안태생의 화가로 로마에서 만난 괴테와 함께 이태리를 여행한다.
괴테는 처음에 빌헴 티슈바인의 숙소에 며칠을 머물고, 포폴로 광장에서 100m 거리 중요거리 Via del Corso 18-20, 1층에 그의 숙소를 마련하게 된다. 독일 아티스트 또 다른 두 명과 함께. Johann Geotg Schutz와 Friedrich Bury.
바로 지금의 Casa di Goethe Museum(Goethe Haus, 괴테하우스) 괴테뮤지엄 이다.
괴테의 꿈같은 로마 생활이 시작된다. 괴테가 말하길 평생 삶 중에서 로마에서 2년 삶은 최고의 시간이었다고 한다.
괴테는 로마의 역사의 유적들을 둘러 보며 영감을 쌓았다. 그리고 그동안 놓았던 집필 작품활동을 다시 왕성하게 시작한다. 또한 주의 몇 몇 화가들과 친분을 쌓는다.
밤에는 로마의 카페에서 로마에 몰려든 아티스트들과 대화의 장을 마련한다. 예술에 대해 많은 대화를 한다.
파리의 몽마르뜨 라핑아젤(Montmartre Lapin Agile) 카페 같은 곳에서 예술가들이 모여서 작품 얘기들을 하듯이 말이다.
괴테의 친구 화가 요한 티슈바인 Johann Tischbein. 괴테를 모델로 해서 여러 그림들을 그렸다. 숙소에서 창밖을 보고 있는 괴테의 뒷 모습, 이라든가 숙소 소파에 친구들과 않아서 시간을 보내는 장면.
괴테하우스(Goethe House in Roma) 내부 - 캄파냐(Campagna 로마 주위의 평원)에서 괴테 |
로마 괴테하우스 전시실 - 괴테 초상앞에 포즈잡은 강영만 감독 |
그중에서 모자를 쓰고 로마 전경을 바라보며 긴 의자에 왼쪽 다리를 뻗고, 팔을 기대고 앉아있는 그림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그의 로마의 삶을 한 장의 화폭에 축약시켜 놓은 마스터피스이다. 티슈바인은 괴테의이탈리아 여행이 갖는 열망과 역사적 전환점의 의미를 이 화폭에 축약시켜 넣고 싶었을 것이다. 또한 그들의 우정을 그린 기념물이기도 했다.
티슈바인은 괴테에게 하얀 수도사복을 입혀 당대 유럽 문화의 선구자적인 의미를 나타냈다. 이집트의 오벨리스크 위에 기대 앉은 그는 오른쪽 발은 땅에 닿으므로 안정감을, 왼쪽발은 길게 늘어뜨림으로 화면을 확장하며 압도하고 있다. 바로 뒤로는 그리스의 이오니아식 기둥주가 파괴되어 박혀있고, 석관 양각에는 그리스 비극중의 하나, 오레스테스와 이피게네이아가 만나는 장면이 그리스 연극에 대한 괴테의 깊은 관심과 연결을 짖는다.
사색에 잠겨있는 괴테의 먼 배경에는 로마의 유적들이 보인다. 괴테는 자신이 창조해 낸 인물인 파우스트를 연상시키며, 창조를 하기위해 찾아 다니는 사람에게 방황은 어쩔 수 없다, 삶은 물질로만 완성될 수 없고, 늘 고통의 바다로 항해를 하는 것과도 같다.
이 그림은 뮤지엄 입구에도 걸려있다. 즉 로마에서 괴테의 삶을 나타내는 일종의 심볼이 된 그림이 된 것이다.
캄파냐(로마 주위의 평원)에서 괴테 - 다른 버전 |
괴테 하우스에 방문한 앤디워홀 (Andy Warhol) |
앤디워홀의 작품 - 괴테 초상화 |
괴테의 하우스에서는 이런 그림들 이외에도 많은 서적들과, 조각들, 도서관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괴테가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스케치 했던 식물들 실제 그림들까지 전시되어 있다. 괴테도 한때 화가가 되고 싶어했다.
필자가 괴테하우스(뮤지엄)을 방문한 후 며칠 후에 로마 괴테문화원(Goethe Institut) 을 방문하게 된다. 그때 문화원 1층 카페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란다. 바로 그 그림이 더 큰 사이즈로 한쪽 벽을 덮고 있는 것이다.
물론 같은 화가는 아니다. 문화원 벽에 걸려있는 작품은 모던 아트이다. 오리지널이 유화로 페인팅 하는 대신 명암을 점묘법을 이용하여 아주 작은 사진들로 빽빽이 채워만든 일종의 꼴라쥬 기법의 작품이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모두 인물 사진들이었다.
이렇게 연관성있는 작품들이 로마에 숨어있었던 것이다. 이런 연관성이 있는 괴테의 보물들을 발견할때마다 꼭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코드를 푸는 느낌이었다.
이 뿐만이 아니라 필자는 괴테의 연관성 있는 작품을 또 하나 발견했다.
그것도 같은 날 필자가 괴테 하우스를 방문하고 나서 디지털 미디어 웹페스트 Digital Media Fest (구이름: 로마웹페스트 Roma Webfest) 행사가 있는 공원안에 있는 카사 델 시네마(Casa del Cinema)로 걸어가는 도중이었다.
괴테 하우스에서 나와서 포폴로 광장으로 향했다. 괴테가 가장 좋아했던 감명을 받았던 장소. 오후의 햇살이 강하게 내리쬐었다. 광장을 꽉 채우고 있는 관광객들. 전 세계에서 이런 감명을 받으러 몰려 들었을 것이다.
비누 거품이 하늘을 뒤 덮기 시작한다. 태양 빛에 비누 거품들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필자는 그 순간을 놓치기 싫어 카메라에 담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박물관을 옆으로 해서 언덕으로 걸어 올라갔다. 언덕 공원에 올라가니 포폴로 광장이 한눈이 다 보였다. 다행히 필자는 스마트폰 렌즈 앞에 부착할 수 있는 롱렌즈 (텔레포토렌즈)가 있어서 당겨서 광장을 찍을 수 있었다.
비누 거품으로 둘러싼 로마 포폴로 광장(Piazza del Popolo) |
로마 포폴로 광장 Piazza del Popolo (스마트폰 줌렌즈 8X ) |
좀 더 언덕을 올라가니 로마시 전경이 보였다. 역광으로 빛이 강하게 내려 쬐었다. 이 장소에서 1시간만 더 기다려도 근사한 노을속의 로마시가지 전경을 촬영할 수 있었으나, 필자는 웹영화제 행사때문에 아쉬운 발걸움을 재촉했다.
구글맵 Google Map 을 보며 공원을 가로 질러 걸어가면 15분내에 도착할 수 있었다. 카사 델 시네마에 거의 도착할 무렵 가는 노선에 카메라 심폴이 구글맵에 나타났다. 궁금해서 자세히 보니, “앗! 괴테동상이 아닌가!"
필자는 깜작 놀랐다. 이런 곳에 괴테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니. 그것도 행사장과 아주 가까이 있었다. 작년에 웹영화제에 방문했을 때는 몰랐다. 그리고 작년에는 필자가 괴테에 관해 그렇게 깊게 관심이 없을 때이다. 그러다가 그 후에 롯데하우스(Lotte Haus) 웹드라마 작품에 전념하며 괴테에 빠져 들었기 때문이다.
괴테뮤지엄의 발견도 호텔방에 놓여 있던 로마 관광 매거진을 보다가 괴테가 눈에 들어왔기에 발견한 것이다.
“관심을 가지라, 그러면 눈에 보일 것이다."
이번 로마여행은 괴테의 발견이라 큰 수확이었다. 시즌 2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기발한 아이디어를 만들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괴테는 2년 동안 환상의 시간을 가지는 동안 비공식적으로 이탈리아 여인과 사랑에 빠졌을 것이다. 아무도 모르는 관계, 괴테와 그녀만의 비밀의 관계. 제 2의 롯데.
그리고 2년 후에 정부의 강압적인 호출로 돌아가야만 했던 괴테. 사랑하는 여인을 데려갈 수 없었던 괴테. 설사 괴테가 데려가고 싶어도 이태리 여인은 거절했을 것이다.
그러자 괴테는 그녀를 떠나면서 그들의 사랑이야기가 담긴 소설을 선물을 주고 떠난다. 본인이 죽기 전까지 출판하지 말라는 부탁과 함께.
그러나 그녀가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고, 그 소설책은 행방 불명이 된다. 로마의 옛날 건물, 어느 다락방에 숨겨져 있을 것이다.
로마버전 롯데의 이야기가 어디엔가 숨겨져 있을 것이다.
다빈치 코드가 로마 유적지마다 숨겨 있듯이 말이다.
만약 그 숨겨진 소설을 찾아낸다면 그 값어치는 얼마나 될까?
(글/사진 강영만 Young Man 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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